질문자 인사
‘국수 완전정복’ 편을 만드는 《식객》 취재팀은 국수 맛있기로 소문난 전국의 맛집을 탐방하다 ‘잔치국수 맛집’으로 이곳을 낙점했다. 열 번 가까이 이곳을 다녀간 취재팀은 올 때마다 국물 내는 비법을 꼬치꼬치 캐묻고 국물을 싸 갔다고 한다. 명실공히《식객》이 인정한 맛집이지만, 간판이며 내부 인테리어는 허름하다. 기존의 떡볶이 가게를 개조해 3년 전에 문을 연 이곳 최은주 사장은 오로지 맛에만 집중한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역시 ‘멸치국수’ ‘김치말이국수’ ‘비빔국수’ 순이다. 학교 앞이라 밥을 찾는 학생들이 많아 수제비, 도토리묵, 김치볶음밥 등 각종 분식류도 판다. ‘멸치 국물로 만드는 잔치국수가 맛있어 봐야 잔치국수 맛이겠지’ 하며 맛본 멸치국수는 허를 찔렀다. 멸치 국물의 진한 맛이 살아 있으면서도 비린내 없이 깔끔하고 개운했다. 푸짐하게 나오는 3000원짜리 멸치국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맛이 아닐까. 동행한 사진기자는 “최고예요, 최고!”라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잔뜩 긴장한 채 반응을 살피던 최 사장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제가 칼칼한 것을 좋아해요. 고향이 강원도 영월이거든요. 강원도 음식은 멋 부리지 않아 소박하고 토속적이잖아요. 어머니가 어렸을 때 만들어 주셨던 국수 맛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서울 손님은 서울 맛을 따라가지만 내가 좋아하는 맛을 좋아해 줄손님들이 분명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이들 좋아해 주실 줄 몰랐네요.”
최은주 사장은 비법을 물어보면 누구든 친절하게 다 알려준다. 만화 《식객》에도 그만의 비법이 상세히 공개돼 있다. 얼마 전에는 ‘면사랑’ 초청 강연에서 비법을 공개했다. 이 가게만의 두 가지 비법이 있다. 첫째는 다대기. 다대기는 일반적으로 간장과 참기름, 마늘, 파 등을 넣지만 이곳의 다대기는 차원이 다르다. 간장과 참기름, 마늘을 쓰지 않는다. 고운 고춧가루와 청양고추, 붉은 고추, 그리고 대파의 흰 부분을 넣고 멸치 젓국을 약간 넣어 걸쭉하게 만든다. 대파의 파란 부분을 넣으면 진득한 액때문에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 다대기는 간을 맞추는 용도가 아니라 국물을 칼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다대기를 넣었을 때와 안 넣었을 때의 맛은 천지 차이다. 다대기를 안 넣으면 멸치 국물의 구수한 맛이 살아 있지만 다대기를 넣으면 잡스러운 맛을 없애면서 제3의 맛이 탄생한다.
두 번째 비법은 멸치 국물. 대멸(국물용 큰 멸치)과 디포리(말린 밴댕이)를 반반씩 섞어서 국물을 낸다. 멸치 중에서도 대멸을 쓰는데 멸치만 넣으면 깔끔하지만 특색 없이 심심하고, 디포리만 넣으면 생선 맛이 너무 강하다. 이때 비린내 나지 않게 국물을 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대멸과 디포리를 장작처럼 바짝 말려 써야 하고, 무와 다시마를 넣고 물이 팔팔 끓을 때 멸치와 디포리를 넣어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식당 위 다락방에 누워서도 손님들의 맛 품평을 들어요《식객》에도 공개하지 않은 5% 비법이 있다. 국물만들기 마지막 단계로, 위의 재료들을 40분 정도 우린 국물에 곱게 간 양파와 마늘, 다시마 등을 넣는 것. 마지막에 넣기 때문에 각각의 양념 고유의 맛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 집에서는 국물에 소금을 넣지 않는다. 대신 멸치 젓국으로 간을 맞춘다. 조미료를 일체 넣지 않는데, 손님들이 “에잇, 조미료 맛이 나네” 할 때가 가장 억울하단다. 국수는 소면으로 삶아야 맛있다, 중면이 더 맛있다 의견이 분분하다. 최 사장의 말.
“소면으로 삶으면 너무 빨리 불어요. 중면은 불지 않았는데 손님들이 보자마자 불었다고 그래요. 시각적으로 불어 보이는 거죠. 그래서 저는 소면과 중면 중간 굵기의 국수를 따로 주문해서 만들어요.”
주방 옆 테이블에는 부추와 대파 등이 쌓여 있는데, 밭에서 막 뽑아 온 것처럼 신선했다. 최 사장은 이곳을 열기 전에 남편과 함께 과일가게를 운영했다. 이때 터놓은 청과물 도매상에서 신선한 재료를 사 온다. 지금도 장보기는 최 사장이 이틀에 한번씩 직접 한다.
최은주 사장은 “뭐든 쉽게 얻는 것은 없는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24시간 운영하는데, 예전에는 새벽 3시까지 했어요. 직원들이 다 퇴근한 후 혼자 주방에 남아 밤새 맛을 연구했죠. 주변 사람들은 저한테 미쳤다고 했어요. 잠도 자지 않고 음식 맛 연구만 하니까. 그때는 맛을 찾는 것에 혈안이 돼 있어서 잠자는 시간도 아깝더라고요.”
그는 요즘도 하루에 2~3시간 잘 때가 많다. 그의 침실은 식당 위 다락방. 천장이 얇아 손님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다 들리는데, 국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벌떡 일어나 귀를 쫑긋 세운다고. 계산대에 서서 국수를 먹는 손님들의 표정과 반응을 유심히 살피는 게 그의 가장 큰 임무다. 스스로 “예민해서 상처를 잘 받는다”는 그는 손님이 불평 한마디만 해도 상처를 받는다.
“20~30년 된 국숫집들이 많은데, 역사가 짧은 집에서 좋은 맛이 나오겠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열심히 연구해서 찾아낸 맛인데 쉽게 얻어진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보면 속상해요. 간혹 입에 안 맞는다는 분이 있으면, 어떻게 더 맛있게 만들까를 늘 고민해요. 그런 날은 잠도 안 오죠.”
그의 또 다른 일과는 소문난 맛집 다니기. 설렁탕집이든, 갈비집이든 혼자 다니면서 진지하게 맛을 보고, 그 비결을 고민한다. 얼마 전에는 행주산성 근처에 있는 유명 국숫집에 다녀왔다고 한다.
3000원짜리 멸치국수에는 3000가지의 시행착오와 노력이 담겨 있었다.
밥심은국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