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아껴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외국 여행을 떠났던 내 친구들은 하나 같이 한국땅을 밟자마자 엄마가 끓인 ‘우리 집 김치찌개’를 찾곤 했다. 여행도 즐거웠고 현지의 음식들도 맛있었지만, 한국에서 먹던 김치찌개의 맛이 너무나 그리워 한 편으로는 하루 빨리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플라스틱 뚜껑을 열자마자 코 끝을 찌르는 김치의 쉬어버린 냄새, 한국인이 아니라면 누구나 금세 고개를 돌려버릴 냄새겠지만, 우리들은 그 냄새를 맡고 인상을 찌푸리는 대신 ‘김치찌개 끓이면 맛있겠다’라는 생각부터 떠올린다. 마치 무조건 반사처럼.
　이렇듯 김치찌개가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김북순큰남비집 본점

　김치찌개는 보통 김치만을 재료로 사용하기 보다는, 자투리 돼지고기나 참치를 먼저 볶다가 김치를 넣어 만든다. 돼지고기 혹은 참치가 머금고 있는 적당량의 기름기는 가벼울 수 있는 김치의 맛을 한결 묵직하게 만들어주거니와, 숟가락질을 할 때마다 걸려드는 건더기의 묘미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김치찌개는 평상시 집에 있는 재료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만큼 필요한 재료가 심플하기 때문에 그만큼 요리에 드는 비용도 적은 편이다. 돼지고기 자체도 그다지 비싼 부위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고, 참치도 한 캔 따서 뚝딱 때려 넣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별다르게 돈이 들 만한 구석이 없는 것.먹을 시기를 놓쳐 과도하게 숙성된 신 김치, 명절 때 선물로 받아 쟁여둔 참치캔, 먹다 남아 냉동고에 묵혀둔 삼겹살 몇 조각 등은 보통 집에 있는 재료들이니 집에서 만들어먹을 땐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물론, 밖에서 사 먹는다 하더라도 빤히 보이는 재료들의 단가 덕분인지 크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없다.

　그래서일까? 세상의 풍파에 치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시각, 배는 출출하다 노래를 불러대고, 그럴 때면 우리는 갓 지은 뽀얀 쌀밥에 새큼한 향이 담뿍 나는 김치찌개 국물 한 숟가락을 끼얹고 싶어진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대충 쥐어지는 몇 장의 지폐로도 나 하나쯤 배가 터지도록 식사를 할 수 있는 메뉴라서 일지도 모른다. 그저 한껏 밥을 먹다가, 숟가락이 밥그릇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나는 시점에서야 비어버린 밥그릇의 모습을 알아채게 되고, 김치찌개 국물로 한껏 지저분해진 밥그릇의 모습에 피실 웃음이 난다면, 이 것은 당신의 소울푸드가 맞다. 매일 봐서 친근하고, 저렴해서 반가운 나의 김치찌개.

　정말 맛있는 한우 고기를 예약을 통해서만 판매하는 곳이 있다. 서울 도심 한 복판에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예약까지 해야 하니,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이가 얼마 없을 법도 한데, 막상 음식점에 들어가보면 손님들이 바글바글. 벼르고 별러서라도 꼭 먹어야 하는 만큼 맛있는 한우 고기라… 갑자기 김치찌개가 하찮게 느껴지는 건 나 뿐일까. 친숙한 것과 특별한 것 중 어느 것이 더 우위라 평가할 수는 없지만 특별한 것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행복드림 한우정육식당 5호점

　자주 맛보기 힘든 소고기, 더군다나 한우라면. 아니, 그보다는 기다리고 기다려 먹는 순간이라면, 영혼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을만하다. 뜨끈해진 불판에 몇 점씩만 고기를 올려서 핏기가 가시고 육즙이 올라올 무렵, 참기름이 뿌려진 소금에 콕 찍어 한 입에 넣는 그 맛은 진정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한 점 한 점이 소중할 만큼 눈물 나게 비싼 가격이라면 더더욱.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매일 상에 올라오는 음식은 물리기 마련이다. 먹고 싶었지만 월급날까지 기다리며 마음 한 켠에 고이고이 간직해둔 음식이야말로 진정한 내 소울푸드가 아닐까.

　아낌없이 최고급 재료들을 넣은 칼국수는 소울푸드가 아니다. 투박하고도 더 투박하게 만들어진 칼국수야말로 지금 중년의 나이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조그마한 향수와 함께 그 시절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소울푸드다. 비싼 고급 재료는 아니되, 몸에 나쁘지 않은 국내산 재료들을 넣어 깊이 있는 맛의 육수를 정성스레 우리고, 전국 여기 저기서 공수해 온 야채와 고춧가루를 넣어 완성하는 칼국수. 면은 자로 잰 듯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조금은 울퉁불퉁하게 그 두께가 달라야 제 맛이다.

|40년 전통의 할매손칼국수

　주재료가 멸치나 다시마, 야채 조금, 그리고 밀가루 정도이다 보니 칼국수는 요즘도 저렴한 가격에 편히 맛볼 수 있는 메뉴가 됐다. 최근에는 외국인까지 줄을 서서 먹는 맛집들 중 칼국수집도 몇몇 있는 것으로 보아 칼국수가 간판메뉴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세를 탄 칼국수라 하더라도 특별히 값이 나가는 재료를 넣지 않은 이상 만원을 넘어가는 가격을 받는 곳은 드물다. 그야말로 서민을 위한, 서민에 의한, 서민의 음식인 셈이다. 요즘 칼국수집에는 젊은이들도 많지만, 그래도 비율상 나이가 지긋하신 중년 혹은 노년의 신사들이 많다. 사치부리지 않고 식사 겸 반주를 할 수 있는 좋은 메뉴이기 때문이고, 그만큼 친숙한 메뉴이기 때문일 것이다. 칼국수의 면을 후루룩 하고 몇 젓가락 집어 배를 채운 후, 시원한 소주 한 병에 따끈한 칼국수 국물을 곁들여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쉽게 목격된다. 그네들의 안주거리는 디지털화된 현대사회의 차가움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고, 그네들이 풍미하던 아날로그 시대를 대변하는 듯 따끈한 칼국수의 국물이기도 하다.

　외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은 여자주인공이 입에 한껏 휘핑크림을 짜넣는 장면이 나온다. 평소 칼로리 걱정으로 커피 위에 놓인 휘핑크림조차 거둬내고 먹던 여주인공들이,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인 상황에서는 모든 긴장의 끈을 풀고 양껏 먹어대는 것.
　왜일까, 이유는 필자 역시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받는 상황에서 월남쌈을 싸 먹는다던가 야채 샐러드를 해먹고 싶지 않은 건 확실하다. 떼어내는 순간부터 치즈가 주욱 하고 늘어나는 토핑 만땅의 피자가 훨씬 그리워지는 이유는,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 때문일지도 모른다.

|엘본더테이블

　하지만 이는 정말 정통으로, 정성스럽게, 제대로 만든 양식 요리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잘 숙성된 치즈를 아낌없이 넣고 정성스레 반죽한 도우를 사용한 피자, 유기농 재료들로 알차게 구성해서 치즈를 올린 라자냐, 기가 막힌 비율과 타이밍으로 만들어 낸 진한 크림 소스 파스타 등… 심금을 울릴 만한 양식 요리를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내 지갑 걱정은 한 켠에 미뤄두어야 한다.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싸구려 피자 따위완 비할 수 없는, 소울푸드 다운 양식 요리는 그만큼 비싼 가격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만큼 그 기회는 소중하기 마련이다. 하얀 외피의 브리치즈와 까망베르 치즈, 신선한 생 모짜렐라 치즈, 푸른 곰팡이가 피어 깊은 맛을 자랑하는 블루치즈, 고르곤졸라 치즈 등… 고급 양식 레스토랑에서는 치즈만 해도 이토록 다양하고, 또 깊은 맛을 자랑한다. 평소 샌드위치 사이에서 발견해내던 체다치즈 따위와의 비교는 접어두도록 하자. ‘특별함’은 모든 이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것이니, 만끽하는 것만이 최선.

　어느 드라마에서였던가, 웹툰에서였던가… 여자주인공은 장기 연애를 해오던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문득 떡볶이를 떠올렸다. 얼굴은 보고 싶고, 함께 밥을 먹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학창 시절,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으면서 항상 그녀를 분식집으로 데려가곤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먹어댄 덕분에 떡볶이에 진절머리가 났던 그녀는 얼른 돈을 벌어 남자친구와 함께 좋은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헤어짐의 순간, 그녀가 떠올린 것은 그와 함께 먹었던 떡볶이였다. ‘그 때, 그 떡볶이…참 맛있었는데…"

|공수간

　단순히 분식을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도 있겠지만, 분식을 ‘소울푸드’라고까지 칭하는 이들에게는 분식에 제 나름의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떡볶이가 그리워 점심시간에 학교 담을 넘어 분식집으로 뛰어갔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방과 후 친구들과 컵 떡볶이를 먹으면서 하교하던 하교길이 좋아 그 재미로 학교를 다녔다고도 한다. 또한 혹자는 친구들과 한 집에 모여 처음으로 만들어 먹었던 떡볶이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분식은 심플하게 ‘맛’ 때문에 소울푸드로 꼽히기 보다는, 그 문화가 만들어 낸 이미지가 더해져 소울푸드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끼니를 해결하게 해준 녀석, 퇴근길에 단돈 몇 천원만 내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부르게 야식을 먹을 수 있게 해준 녀석, 외근 후 사무실에서 고생할 팀원들 생각을 위해 푸짐한 간식거리를 사갈 수 있게 해 준 녀석…그 녀석들이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분식이다. 떡볶이, 순대, 튀김, 어묵, 꼬마김밥 등… 이들의 조합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가. 어린 아이든 할머니든 다 큰 성인이든 할 것 없이 누구나 부담 없이 먹고, 사가고, 사다 주는 음식. 분식은 왠지 모를 정과 따뜻함이 서려있는 음식이기에 오랜 기간 사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급 한정식을 만나본 이라면 이 기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제대로 대접받고 있구나…’하는 느낌. 곱게 옷을 차려 입은 종업원이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맞이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기다린다. 속을 달래주고 입맛을 돋구어 주는 전식부터 몸을 보양하게 하는 본식, 입 속을 깔끔히 마무리해주는 후식까지 하나 하나, 나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지는 식사. 몸과 마음을 함께 보양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일지도 모른다.

|진진바라 서울점

　한정식집은 가격대가 높은 만큼 그만큼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그만큼 최고급 재료로 만든 건강한 식사를 대접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친숙한 메뉴에 고급 재료를 사용하여 조금은 색다르게 구현해내기도 하고, 궁중에서나 맛 볼 수 있었다는 역사 속 요리를 재현해 선보이기도 하는 한정식, 그 묘미를 알게 되면 다른 음식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성의 힘을 느끼게 된다. 심금을 울리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건강을 생각한 웰빙 밥상 덕분에 건강과 함께 영혼이 충만해지는 느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