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록새록 외할머니 손맛 '고가(古家)'

글 / 이진랑 (맛 칼럼니스트)

맛 칼럼니스트라는 명함을 내밀면 십중팔구는 ‘맛있는 거 많이 먹겠네, 부러워요. 어느 집이 맛있어요’라는 인사가 이어진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적잖이 부담스럽다. 음식 맛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라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고 문전성시인 식당을 일부러 찾았다가 음식 맛에 실망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맛 칼럼니스트로서 맛집을 가리는 나만의 기본 원칙만큼은 있다. 나는 입을 혹하게 하는 음식 보다는, 비록 거칠지만 정성과 손맛이 담긴 음식을 내는 식당을 높이 평가한다. 이왕이면 주인이 주방을 담당하고 김치나 장류, 소스까지 직접 만드는 식당이라면 더욱 믿음이 간다.

주관이긴 하지만 음식마다 어떤 느낌이라는 게 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보면 그 음식이 진실인지 거짓인지가 느껴진다. 음식재료가 내는 본연의 순수한 맛과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올곧은 정신까지 담긴 음식은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화학조미료를 넣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손맛으로만 음식을 만드는 식당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수년 전, 동창 모임장소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분당의 ‘고가(古家)’라는 한정식집은 비교적 부담없는 가격에 대나무통밥 한정식을 먹을 수 있다.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갖은 음식을 내는 한정식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이집은 구색을 맞추느라 한 번도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을 차려내기보다는 실속있는 상차림이라 오히려 맘에 든다.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그저 흔한 전통찻집이려니 싶어 음식 맛에 대한 기대 따위는 애당초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나무통밥 한정식을 먹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미각을 휘어잡을 만큼 확 끌리지는 않지만, 깊은 맛이 새록새록 우러났다. 간장게장, 잡채, 조개젓 무침 등을 찬찬히 음미할수록 외할머니 손맛이 떠올랐다. 결국 나만의 직업병이 발동했다.

나는 원래 음식 하나하나의 맛내기 비법보다는 된장과 고추장 등 맛의 근원을 캐묻는 버릇이 있다. 우리 한국음식은 장맛이라 하지 않는가. 역시 내 예측은 적중했다.

고가 주인장 윤정숙 씨는 “화학조미료와 방부제가 들어간 음식은 절대 손님상에 올리지 않아요. 된장과 간장, 고추장만큼은 직접 내 손으로 담가 음식맛을 냅니다.” 라며 음식철학을 내비쳤다.

역시 고집스레 장인정신을 지켜나가는 집이라 음식마다 진실이 느껴졌던 게다. 나물 무침 하나도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으로 조물조물 맛을 냈으니 혀보다 마음이 먼저 알아챈 것이다. 이 집 주인장이 광주출신이라 남도식 한정식을 낸다. 당연히 전주가 고향인 내 입맛에는 그 맛이 혀끝에서 더욱 감긴다.

어릴 적 고향집과 외할머니 손맛을 추억하게 하는 ‘고가’는 분명 지인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내 수첩속의 맛집’이다. 봄이라 부쩍 까칠해진 입맛도 살릴 겸 옛 친구들을 불러 ‘고가’로 외식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지.

가는 길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136-11 / ☎031-707-5337~8 / 영업시간 10:00∼22:00(연중무휴) 

위치 :분당 율동공원 가는 길(새마을 연수원 방향) 왼편 숲속 카페촌에 위치(분당선 서현역 2번 출구 도로 건너편 15번 마을버스  LG주유소 지나 안집 뒤에 위치) /www.분당고가.com

메뉴 : 대나무통밥한정식 1만2천원, 떡갈비정식 2만4천원, 닭다리 마늘구이 2만5천원,

         간장게장 1만5천원, 전통차류 5,000~6,000원

<출처 : 행복한 동행 별책부록 / 봄여행 (맛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