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제목의 과격함을 용서하시와요.-_-;;;;;

이 글 전에도 주문진 여행기를 올렸는데요, 그 글은 올해 1월 여행기였구요, 이 글은 2006년 주문진 첫도전&실패기;;입니다.

 

 

지난 2006년 10월. 갑작스럽게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동해, 간단한 짐만 챙겨 무작정 주문진행 고속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강릉을 거쳐 주문진까지는 대략 두시간 반..

벌써 가슴 속에는 맑기가 1급수라는 주문진 소돌마을의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어요.

 

강원도 진부쯤이었나...

강릉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바람이 차창을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래봐야 무슨일이 있겠냐.. 지금은 10월이다... 소나기나 한 번 뿌리려나...정도의 느긋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일분 일초가 다르게 점점 하늘이 까매지고 바람이 거세졌지더군요.

강릉터미널에 도착하자 이제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느닷없이 주문진까지 안간다고 내리라는 대단하신 기사님..-_-;

다른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버스기사분들의 대화를 엿;;듣는데, 강원도 영동지역 전체가 폭우와 강품으로 난리가 났다는 것이어요.

왜 하필!!!...;;; 그래도 이미 와버린 것을 어쩌란 말이냐... 소돌마을까지 꼭 가고야 말겠다 는 생각에 고집스레 주문진행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바람따라 비따라 이리저리 흔들흔들.. 뒤질세라 가슴이 벌렁벌렁...

무슨... 태풍 속으로 죽으러 들어가는 심정이었달까요...

그래도 주문진터미널까지는 용케 잘 갔는데.. 이눔의 하늘이 뭉텅 찢어지기라도 했는지 비바람을 쏟아부어대는 것이어요.

터미널 주변의 상가가 전부 문을 닫아걸었고, 거리는 가뭄에 콩나듯 오는 택시와 휘리릭 날아다니는 입간판이 움직이는 전부였답니다.-_-;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빈택시 한 대가 오기에 놓칠세라 홀랑 잡아타고 대충 생각나는 호텔 이름을 댔는데, 가보니... 해수욕장 쪽이면 저처럼 지독히 운없는 관광객 한둘이라도 있었을 터였는데, 이 호텔(을 빙자한 모텔)이 항구쪽에 위치해 있다보니, 관광객은 커녕 생계일 나선 어민 한 분 없이 음산하기가 이루말할 데가 없더군요.

그 뿐이 아니라...그눔의 건물은 그래도 고지대에 있었는데, 어쩌자고 굳이 땅을 파고 지었는지 로비가 물바다가 되어 있었어요.-_-

더이상 움직일 힘도 없으니 그냥 꼭대기층 방을 달래서 들어갔는데, 창문을 죄다 열어놔서 거기도 물바다인 거 있죠.-_-+++

젠장...

열심히 수건으로 대충 방을 수습했죠.

티비도 안나오고 냉장고도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고.. 엉망이었지만, 숙소를 옮기겠다고 나서자니, 바람은 점점 더 세져서 귀가 터져라 울어대고 그에 뒤질세라 사방에서 유리창문이 뻥뻥 터져대는 거예요.

.............. 

두어시간 그렇게 한숨만 쉬고 있다보니 배가 고프더군요.

호텔 식당은 말해야 입아프고 굶어죽지 않으려면 나가야했어요.

세번을 나갔다가 들어갔다를 반복하던 끝에, 우산도 팽개치고 맨몸으로 쫄딱 젖어가며 거리며 항구를 헤맸습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문 연 식당이 없었어요.

그래도 나온 김에.. 들어가면 다신 못나온다고... 뒤지고 또 뒤진 끝에, 드디어 편의점 하나를 발견했어요.

 

살!았!다!

 

유통기한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한 삼각김밥 두 개...렌지에 데우지도 못해서 차갑고 딱딱한 불고기맛바(?)... 미지근한 물 대충 부어넣은 컵라면 하나...

 

여전히 살벌한 바람소리와 유리 터지는 소리가 엎치락뒤치락 울려대는 와중에, 호텔방 침대 위에서 어렵게 구해온 녀석들을 끌어안고서, 정말 망연자실하다는 기분이 어떤 건지 확실하게 체험했네요.

 

 

다음날~.

 

비가 그쳤습니다.

바람도 조금은 잦아들었구요.

일찌감치 체크아웃하고 뜨끈한 아침밥을 먹으러 항구로 나갔어요.

그렇지만, 전날 휩쓸고 간 수마에 속수무책 당했던 주문진 사람들은, 깨지고 부서지고 물에 잠긴 세간들을 건져내며 뒷수습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더랍니다.

 

먹는 것은 관두고 바다라도 보자고 방파제로 나갔지만... 여전히 기세좋은 파도가 방파제를 넘나들고 있는지라, 주문진의 빨간 등대는 이렇게 멀찍이서 볼 수밖에 없었네요.

 

 

.........

원래 목적지였던 소돌마을까지는 가보자는 생각에, 이정표가 가리키는대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앞만 보고 묵묵히 걷고 걷기를 3~40분쯤? 소돌마을 민가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여요.

 

 

좁은 골목 몇 개 사이에 두고 감나무 하나씩을 낀 작고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보자,

괜하니 반가운 기분이 들더군요. 단 하루 고생했을 뿐인데 사람이 너무 그리웠던 것 있죠.

게다가 그토록 원했던 바다도 볼 수 있겠다 싶으니 감정은 더욱 고조됐어요.

나는 듯한 발걸음으로 마을의 골목길을 내달렸죠.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부서진 집기들로 골목이 좁고 험해졌지만, 탁 트인 바다,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뭔가 해소의 기분을 느끼는 것이 가장 절실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허공과 바다...

눈앞이 뻥 트였...  

..다고 생각했으나 왠 철조망이...

 

소돌마을의 바닷가는 꽤 분주했어요.

간밤에 전신주들이 전부 바다를 향해 쓰러져버린 터라, 급한대로 해변에 철망을 두르고 작업 차량 몇 대를 배치해 공사를 하고 있었던 거에요.

해변을 마주한 가옥들은 진흙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그나마 상가의 전부인 몇 안되는 횟집들의 수족관까지 젖은 모래가 그득하더군요.

 

그대로 바다를 등지고 나와 시내버스를 탔어요.

주문진터미널에 내려서 서울로 돌아오는 티켓을 끊으려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구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리고 아무 말도 못하고 펑펑 울었네요. 너무너무 속상하고 너무너무 억울한 기분이었거든요.

한참 후에야 간신히 내뱉은 몇마디,

"주문진, 태풍 와서, 유리 뻥뻥, 바다 못가, 배도 고프고..."

대충 상황을 짐작한 동생은, "다음에 함께 다시 가보는거야!!!" 라며, 위로의 말을 해주더군요.

그리고 꼭 밥을 먹으라고 하더라구요.-_-

 

그래도 터미널 주변에는 몇 곳 문을 연 식당이 있었어요.

자리를 잡고 앉아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동태찌개를 시켰습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도 그런대로 안정을 찾았네요.

 

밥이다~!

 

 

장사 준비에 꽤 애를 먹고 있었는지 한참이나 걸렸지만 , 그래도 제대로 내준 밥상을 받고 보니,

갑자기 그래도 세상이 살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하여간 먹을 거면 다 되는 단순무식한 데가 있다니까요.-_-

 

암튼 이 동태찌개.. 상당히 매력있었어요.

 

두부도 없고 무도 거의 안보이고 미나리 쑥갓은 딴나라 얘기인, 그러나 동태만큼은 큼직큼직한 것이 상당히 박력있어뵈는 찌개...

고추가루로 매운 맛을 내서 칼칼하고 시원한데다가 생선이 푸짐하게 들어서 국물이 진하기까지 해요.

그리고, 모양이 그대로여서 살이 쫀쫀할 것 같지만, 숟가락으로 떠보니 의외로 부드러웠어요.

 

 

시장이 반찬?? 뭐...;;; 그랬을 수도 있죠...;;;;;

그래도 이 따뜻하고 든든한 한 끼로 마음이 소로록 풀려서, 주문진은 <꼭 다시 가서 제대로 보고 싶은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올해 1월에 기어이 벼르고 별러 다시 방문한 주문진은, 눈과 우박이 펑펑 쏟아져서 여전히 예측불허의 날씨를 뽐냈지만^^;, 미치도록 아름답고 시원하던 바다와 신선하고 맛깔나던 다양한 해산물요리들로, 최고의 추억을 안겨주었답니다.^ㅁ^(이 여행에 대해서도 얼마전에 기행글 올렸답니다.)

이상 개고생 여행기 끝~!^-^;;;